단위 | 임진왜란 전쟁연표 X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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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2 |
[1592.04.13] 고니시 유키나가(小西行長)의 일본군 제1군이 절영도(絶影島)에 상륙, 임진왜란 시작
[1592.04.14]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공격하여 첨사 정발(鄭撥)이 전사하고 방어군 천여 명 전사
[1592.04.15] 동래성이 함락되고 부사 송상현(宋象賢), 양산군수 조영규(趙英珪) 등이 전사
[1592.04.25] 상주(尙州)에서 순변사 이일(李鎰)이 패배하여 충주(忠州)로 철수
[1592.04.28] 충주(忠州) 탄금대에서 삼도순변사 신립(申砬)이 이끄는 부대가 패배하고 신립과 김여물(金汝岉)등이 전사(탄금대전투)
[1592.05] 부원수 신각(申恪)이 양주의 해유령(蟹踰嶺)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60여명의 목을 벰
[1592.05.07] 전라좌수사 이순신(李舜臣) 함대가 옥포(玉浦) 앞바다에서 일본 함선 26척을 격파하고, 이어서 합포(合浦)의 일본 함선 5척을 격파함
[1592.05.08] 전라좌수사 이순신(李舜臣) 함대가 적진포(赤珍浦)에 정박 중인 일본 함선 11척을 격파함
[1592.05.17] 임진강 방어선의 붕괴. 조방장 유극량(劉克亮) 전사
[1592.05.25] 의병장 곽재우(郭再祐)의 의병 부대가 정암진(鼎岩津)을 도하하는 안코쿠지 에케이(安國寺 惠瓊) 휘하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함안 방면으로 격퇴시킴
[1592.05.29] 전라좌수사 이순신(李舜臣) 함대가 사천(泗川)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 13척을 격파함. 새로 건조한 장갑선인 거북선(龜船)이 최초로 실전에서 사용됨. 일본군의 총탄에 이순신 부상
[1592.06.02] 전라좌수사 이순신(李舜臣) 함대가 미륵도(彌勒島)의 당포(唐浦)에 정박 중인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21척 모두를 격파
[1592.06.05] 경상도, 전라도, 충청도 3도 관찰사가 거느린 근왕병이 용인 문소산(文小山)에서 와키사카 사헤이(脇坂左兵衛)의 일본군에게 패배. 선봉장 백광언(白光彦), 이지시(李之時) 전사
[1592.06.05] 전라좌수사 이순신(李舜臣), 전라우수사 이억기(李億祺), 경상우수사 원균(元均)이 지휘하는 연합 함대가 고성(固城) 당항포(唐項浦)에서 일본 함대 26척을 격침
[1592.06.05] 고령(高靈) 의병장 정인홍(鄭仁弘) 부대가 낙동강변의 무계(茂溪)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밤에 기습
[1592.06.15] 평양성(平壤城) 함락. 선조 의주(義州)로 피난
[1592.07.07] 진안의 웅치(熊峙)에서 나주 판관 이복남(李福男)이 전주(全州)로 침입하려는 안코쿠지 에케이(安國寺惠瓊)의 일본군을 맞아 방어하였으나 실패하고 김제 군수 정담(鄭湛) 전사
[1592.07.08] 이치(梨峙)에서 광주 목사 권율(權栗)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(小早川隆景)의 일본군을 맞아 격퇴함. 이치 전투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
[1592.07.08] 이순신(李舜臣), 이억기(李億祺), 원균(元均)의 조선 함대 72척이 한산도 견내량(見乃梁)에서 와키사카 야스하루(脇坂安治)가 이끄는 일본 함대 66척을 격침
[1592.07.09] 이순신(李舜臣), 이억기(李億祺), 원균(元均)의 조선 함대가 가덕도 안골포(安骨浦)에서 구키 요시타카(九鬼嘉隆), 가토오 요시아키(加藤嘉明)가 지휘하는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20여 척을 격파
[1592.07.09] 의병장 고경명(高敬命)의 전라도 의병과 전라도 방어사 곽영(郭嶸)의 관군이 금산성의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고경명 전사
[1592.07.17] 요동(遼東) 부총병 조승훈(祖承訓)의 명나라 군 3천 명과 김명원(金明元)의 조선군이 평양성(平壤城)의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함. 유격장 사유(史儒) 등 전사
[1592.08.01] 평양 수복을 위해 순변사 이빈(李賓) 등이 거느린 조선군이 단독으로 평양성(平壤城)을 공격하였으나 실패
[1592.08.02] 의병장 조헌(趙憲)의 의병, 승려 영규(靈圭)의 승병, 충청도 방어사 이옥(李沃)의 관군이 연합하여 청주성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청주 탈환
[1592.08.18] 조헌(趙憲)과 영규(靈圭)의 의병 부대가 금산의 연곤평(延昆坪)에서 고바야카와의 일본군을 맞아 싸웠으나 전멸
[1592.09.01] 초토사 이정암(李廷馣)이 황해도 연안성을 4일 동안 포위 공격하는 일본군을 격퇴
[1592.09.01] 이순신(李舜臣), 이억기(李億祺), 원균(元均)의 조선 수군 연합 함대가 부산포의 일본군 본진을 공격하여 1백여 척을 격침시킴. 녹도 만호 정운(鄭運) 전사
[1592.09.09] 경상좌병사 박진(朴晋)이 경주성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경주를 탈환함. 이 전투에서 신형 무기인 비격진천뢰(飛擊震天雷)를 사용하여 큰 성과를 거둠
[1592.09.16] 북평사 정문부(鄭文孚)의 부대가 경성(鏡城) 탈환하고 반역자 국세필(菊世弼) 등을 처단
[1592.10.05] 진주 목사 김시민(金時敏)이 6일 동안 진주성을 공격하는 일본군을 방어하여 격퇴하고 전사. 이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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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3 |
[1593.01.06] 이여송(李如松)의 명나라 군과 김명원(金明元) 휘하의 조선군 연합군이 평양성(平壤城)의 고니시 유키나가(小西行長)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평양 탈환
[1593.01.27] 이여송(李如松)이 고양 벽제관(碧蹄館) 근처에서 일본군의 기습으로 패배하고 파주(坡州)로 퇴각
[1593.02.12] 전라 감사 권율(權慄)이 거느린 2,300명이 행주산성(幸州山城)에서 3만 여명의 일본군을 대파. 이 전투에서 변이중(邊以仲)이 제작한 화차(火車)가 큰 역할을 함
[1593.03.29] 유성룡(柳成龍)이 군제를 진관체제(鎭管體制)로 복구할 것을 청함
[1593.06.22]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직접 명령으로 우키타 히데이(宇喜多秀家)가 지휘하는 일본군 9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함. 6일 간의 전투 후 성이 함락되고 주민 6만 여명이 살륙됨
[1593.08.13] 하삼도(下三道)의 번상병들을 명나라 군중에 보내어 남병(南兵)의 무기와 진법(陳法) 등을 익히게 함
[1593.08.16] 일본군이 경상도 안의(安義)의 황석산성(黃石山城)을 공격하여 성이 함락되고 현감 곽준(郭?) 등이 전사
[1593.09.25] 동지사 허진(許晉)에게 명하여 척계광의 기효신서(紀效新書)중 왕세정(王世貞)이 서문을 쓴 판본을 구입하게 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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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4 |
[1594.02.01] 훈련도감(訓鍊都監)을 설치하고 유성룡(柳成龍)을 도제조로 임명함
[1594.05.17] 낭청 한교(韓嶠)를 기복(起復)시켜 『기효신서(紀效新書)』를 번역하여 편찬하게 함
[1594.10.21] 황해도 정병(精兵) 4천 명을 『기효신서(紀效新書)』의 속오법(束伍法)으로 편성하여 훈련하게 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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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5 |
[1595.05.28] 입직 포수(砲手)로 하여금 삼안총(三眼銃)을 연습하게 하고, 살수(殺手) 훈련을 위해 『살수보(殺手譜)』 편찬을 독촉함
[1595.06.13] 훈련도감(訓鍊都監)에서 『기효신서절요(紀效新書節要)』 1권 등 병서 편찬 상황을 보고함
[1595.12.16] 각 지방의 병사들을 무학사목(武學事目)에 따라 거주지에 모여 군사 훈련을 시킬 것을 명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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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6 |
[1596.01] 도체찰사 유성룡(柳成龍)이 을 정하여 경기, 황해, 평안, 함경도에 반포함
[1596.07.06] 이몽학(李夢鶴)이 반란을 일으켜 홍산현(鴻山縣)을 습격하여 점령함. 이후 청양(淸陽) 등 여러 고을을 점령하여 위세를 떨치다 진압됨(이몽학의 난)
[1596.12.08] 훈련도감(訓鍊都監)에 명하여 불랑기(佛狼機) 등 각종 화포의 사용법을 번역하게 하고, 안변에 있는 연환(鉛丸) 10만개를 가져오게 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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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7 |
[1597.07] 경상 우조방장 곽재우가 창녕(昌寧)의 화왕산성(火旺山城)을 거점으로 가토오 키요마사 휘하의 일본군 공격을 수 차례 격퇴함
[1597.07.08] 일본군의 침공군 주력이 6백여 척의 선단에 의하여 경상도 남해안 일대에 상륙. 정유재란 발발
[1597.07.15] 삼도수군통제사 원균(元均)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칠천량(漆川梁)에서 일본 수군의 기습으로 패배하고 원균, 이억기(李億祺) 등 전사 (칠천량 해전)
[1597.08.16] 일본군의 포위 공격으로 명나라와 조선군이 지키던 남원성(南原城)이 함락됨. 명나라 부총병 양원(楊元)은 도주하고 전라 병사 이복남(李福男) 등 다수 장수가 자결함
[1597.09.07] 경기도 직산(稷山)에서 부총병 해생(解生)이 지휘하는 명나라군이 구로다 나가마사(黑田長政)의 일본군 우군을 격파함. 일본군의 북상 좌절 (직산 전투)
[1597.09.16] 명량(鳴梁) 수로에서 이순신(李舜臣) 함대 12척이 일본 함대 130여 척을 격파. 전라도 해안의 제해권 회복
[1597.12] 명나라 경리 양호(楊鎬)가 지휘하는 조,명 연합군이 울산 도산성(島山城)의 일본군을 수 차례 공격하였으나 실패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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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98 |
[1598.09.21] 제독 마귀(麻貴)의 명나라 동로군이 울산 도산성의 일본군을 여러 날 공격하였으나 실패
[1598.09.21] 제독 유정(劉綎)이 지휘하는 명나라 서로군(西路軍)이 이순신(李舜臣)의 조선 수군과 합동으로 순천 왜교성(倭橋城)의 일본군을 10여 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실패함
[1598.09.28] 명나라 중로군(中路軍)이 사천(泗川)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신성(新城)으로 몰아냈으나 불랑기(佛狼機)의 오발 사고로 일본군의 역습을 받아 성주(星州)로 철수함
[1598.10] 한교(韓嶠)가 조선 최초의 무예서인 『무예제보(武藝諸譜)』를 편찬함
[1598.11.19] 통제사 이순신(李舜臣)의 조선 수군과 진린(陳璘)의 명나라 수군 연합 함대가 노량(露梁) 앞 바다에서 일본군 선단을 공격하여 2백여 척을 격파함. 이순신은 일본군의 유탄에 전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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